-일구회, 한은회 상대로 “게임사 독점계약 요구 즉시 철회하라” 성명서 발표 -“지난 7월 한은회가 게임사 상대로 ‘일구회 배제’ 계약 요구, 2주 뒤 게임사로부터 통보받아” 주장 -2009년부터 시작된 은퇴선수 퍼블리시티권 역사, 대립과 공존 거쳐 다시 갈등 점화 -일구회 “민사 소송, 가처분 신청 불사” 한은회 “공정위 조사 결과 기다리겠다” 한동안 휴전 상태였던 은퇴선수 단체 사이의 갈등에 다시 불이 붙었다. 프로야구 OB 모임 일구회와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협회(한은회)가 프로야구 은퇴선수 초상권과 성명권 등 퍼블리시티권 사용계약을 놓고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일구회 “한은회가 게임업체에 ‘일구회 계약에서 배제하라’고 요구” 주장 12월 13일 일구회는 ‘한은회가 게임사를 상대로 체결한 퍼블리시티권 독점계약 조건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일구회는 성명서에서 “지난 7월 한은회가 온라인 게임사 주요 관계자들을 모아 2022년 계약부터는 일구회 소속 회원들이 더 이상 게임에 노출되지 않도록 일구회와의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일구회와 한은회는 매년 1월마다 국내 주요 온라인 게임사와 협의해 은퇴선수 초상권과 성명권 등 퍼블리시티권의 사용계약을 맺어왔다. 프로야구 선수협회가 통합 관리하는 현역 선수와 달리 은퇴 선수는 일구회와 한은회가 각각 소속 은퇴 선수의 퍼블리시티권 계약을 위임받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한은회가 기존의 이 체제를 깨고 일구회를 배제한 계약을 요구했다는 게 일구회의 주장이다. 일구회는 한은회가 이런 사실을 일정 기간 일구회에 알리지 말라고 게임사를 압박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일구회의 사태 파악을 지연시켜 게임사들을 상대로 계약 협상을 하지 못하도록 고의로 방해했다는 의혹 제기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계약내용의 문제점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알렸지만, 공정위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은회와 온라인 게임사가 “한은회 외 다른 단체와는 계약을 맺지 못한다”는 조건을 명시해 계약을 강행했다는 주장이다. 만약 이 계약이 그대로 실행되면 앞으로는 각종 야구게임에 한은회 소속 은퇴선수만 실명과 사진으로 등장하고, 일구회 소속 은퇴선수는 가명 혹은 가공의 선수로 대체된다. 일구회 회원인 박노준, 임호균, 이선희, 류중일, 윤석환, 전준호 등의 선수는 야구게임에서 만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매년 지급되던 퍼블리시티권 사용료도 일구회 소속 은퇴선수는 받을 수 없게 된다. 은퇴선수와 야구 원로 가운데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이들에겐 적지 않은 타격이다. 일구회는 “이는 오랜 기간 한국 야구계에 함께 몸담았던 동료이자 선후배 사이에 있을 수 없는 행위임은 물론, 명백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사건처리가 진행되는 동안 이와 병행하여 위와 같은 불공정한 계약의 효력을 다투는 가처분 신청을 병행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한은회 측은 일구회의 주장이 추측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한은회 장성호 사무총장(KBSN 스포츠 해설위원)은 “성명서 내용은 일구회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한은회와 게임사 간에 실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추측해서 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장 총장은 “한은회가 게임사더러 ‘일구회와 계약하지 말고 우리와만 계약하자’고 요구한 사실이 없다”면서 게임사 쪽에 화살을 돌렸다. 장 총장은 “게임사 입장에서 계속 일구회와 한은회 둘로 초상권 계약이 나눠지고 복잡하다 보니, 한쪽과 계약하면 계약한 쪽으로 자연스레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다”는 의견을 말했다. 일구회 측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일구회 관계자는 “7월 초 한은회가 6개 게임사를 일구회 몰래 불러 모아 놓고 ‘앞으로 한은회와 계약과 일구회와 계약 둘 중에 택일하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2주 동안은 이 사실을 일구회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 일구회는 2주 뒤 게임사 대표들의 방문 통보를 받고서야 이런 사실을 알았다. 항의했더니 ‘게임사들은 한은회 의견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구회 관계자는 “뒤늦게 게임사들을 모아놓고 ‘공정위에 신고할 테니 계약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한은회가 게임사들을 계속 압박해서 결국 8월 초에 이미 계약을 마쳤더라. 계약 내용에 ‘한은회 외의 다른 단체와는 계약할 수 없다. 한은회 외의 다른 단체 회원 이름은 게임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구회 관계자는 “당시는 리그 중단 사태, 도쿄올림픽 성적 부진으로 한창 야구계가 질타를 받던 때라 은퇴선수들끼리 다투는 모양새를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원만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며 기다렸지만 거절당했고, 어느새 12월이 돼서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며 사안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일구회 “동료, 선후배 사이에 있을 수 없는 일” 한은회 “공정위 조사 결과 기다리겠다” 은퇴선수의 야구게임 퍼블리시티권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는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초상권과 성명권 등 퍼블리시티권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현역 선수들은 프로야구 선수협회가 초상사용권을 관리하기에 게임사에서도 함부로 현역 선수의 이름을 쓸 수 없었지만, 은퇴 선수들은 게임사에서 멋대로 이름과 사진을 게임에 사용해 수익을 올려도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2009년 LG 트윈스 출신 레전드 이상훈(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은퇴 선수들의 퍼블리시티권이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은퇴선수들이 집단으로 게임업체 상대 초상권 사용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나중에는 일구회가 나서서 퍼블리시티권 회복에 앞장섰다. 2010년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일구회는 산하에 은퇴선수협의회(은선협)을 만들고, 위임장을 제출한 은퇴 선수들을 대리해 게임사와 협상에 나섰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선수 개개인과 협상하는 것보다 일구회로 창구를 통합하는 게 편리했기에 환영하는 반응이었다. 야구게임 퍼블리시티권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프로야구 선수협회가 은퇴 선수도 회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한 뒤, 또다른 은퇴선수협을 발족한 것이다. 이후 선수협 산하의 은퇴선수협이 독립해 일구회 산하의 은선협과 통합했고, 이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따로 모여 2013년 조직한 모임이 지금의 한은회가 됐다. 한동안 반목과 적대적 경쟁의 시기를 보낸 일구회와 한은회는 이후 대립 대신 공존하는 길을 택했다. 상호 비난과 회원 빼오기를 자제했고, 라이스버킷 챌린지 등 각종 이벤트에 동참하기도 했다. 게임사와 퍼블리시티권 계약도 매년 초 각자 개별적으로 맺었다. 일구회 관계자는 “인위적인 은퇴선수 단체 통합보다는 다양한 의견과 의사가 존중되는 게 야구 발전에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일부 한은회 회원들이 일구회로 소속을 변경하겠다고 해도 회원 빼오기로 비칠까 우려해 거절했다”고 밝혔다. 일구회 관계자는 “야구 선배로서, 그리고 야구 발전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그동안 한은회를 존중했다. 일체 한은회를 건드리지 않고 조용하게 우리의 활동에 충실했는데 이렇게 돌려받으니 참담한 심정”이라며 “정중하고 정당한 항의에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고 나오는 적반하장에 기가 막힐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구회는 민사 소송과 함께, 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계약의 효력을 다투는 가처분 신청을 할 예정이다. 일구회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가 이제 막 시작돼 12월 안으로 결론이 나오기 어렵다. 12월이 지나면 1월 1일부터는 야구게임에서 우리 회원들이 사라지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일구회로서는 존폐가 걸린 심각한 문제”라고 호소했다. 성명서에서 일구회는 “한은회가 일구회를 배제하는 내용으로 게임사들과 체결한 불공정한 계약을 즉시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일구회는 한은회가 야구계 발전 및 은퇴선수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런 일구회의 요구에 한은회는 “공정위 조사 결과를 기다린 뒤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장성호 사무총장은 “일구회가 공정위에 제소한 상태로, 조만간 공정위에서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다. 한은회는 공정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에 따를 예정”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일구회는 다시 “문제 해결 의지 없이 시간을 끌다 12월이 지나기만 기다리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게임사 넷마블 소속 임광근 팀장은 일구회 성명서에 대한 입장을 묻자 “지금은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공정위에서 조사 중이고 게임업체도 참고인으로 자료를 제출한 상황이다. 이렇다 저렇다 딱히 말씀드릴 만한 내용은 없다”며 논란에서 한 발짝 떨어져 거리를 두는 모양을 취했다. http://www.spoch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