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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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KBO 넥스트 레벨 유감
23-02-1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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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취지를 폄하할 수는 없다. 그에 임하는 분들의 진정성과 열정 또한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방향과 방법에 아쉬움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해에 이어 2023년 올해에도 넥스트 레벨이라는 이름으로 KBO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중학교 진학 예정인 리틀야구, 고등학교 진학 예정인 중학야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상비군'을 편성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프로 지도자들이 프로 수준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년간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며 실적을 축적한 분들이니 그 분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 자체를 불신할 수는 없다. 유소년들을 육성하여 미래에 대비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못해 오히려 너무 늦은 일이다. 고도의 프로그램을 최고의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만큼, 그 대상들을 허술하게 뽑았을 리도 만무하다. 분명 장래가 기대되는 인재들이 모였을 것이고, '넥스트 레벨'에 참여하는 학생 선수들에게는 분명 미래를 위한 소중한 양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없지 않다. 너무 좁고, 너무 깊다는 것이 그 아쉬움이다. 프로야구 리그인 KBO가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리그를 이끌 미래의 슈퍼 스타들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는 '선수 육성'이다. 베이징 올림픽의 영광으로부터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그 때 그 선수들 외에는 대형 스타가 없다는 거다. 물론 이정후(키움 히어로즈) 같은 걸출한 예가 있긴 하지만 종목을 넘어 나라 전체를 뒤흔들던 대형 스타들의 시대에 비하면 아무래도 지금은 심심하다. 매년 신인 드래프트만 해도 아마추어에서 성장한 최대어들이 알아서 들어와 프로에서 갈고 닦으면 스타가 되던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최대어라는 이름으로 프로에 들어온 수많은 선수들이 그 자신의 문제건, 프로에서 육성을 잘못했건 간에 빛을 못 보고 사라진 경우가 너무 많고, 이제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에는 프로에서도 여유가 없어진 상황이다. 개인이 아닌 팀이나 리그 같은 전체의 관점에서 봐도, 누가 망해도 누가 있으니 괜찮다고 여유부릴 수가 없게 된 거다. 싹수가 기대되는 선수들을 어릴 때부터 미리 뽑아서 미리 관리하자는 발상은 그런 의미에서 나쁘지 않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결국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움직이고 성장한다. 사람들이 좋아할 이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어떻게든 좋아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요컨대 어릴 때부터 야구를 숨쉬듯 보고 듣고 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팬 육성'이 중요한 것이다. 전처럼 아빠 손잡고 경기장 와서 자연스럽게 야구 팬 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넥스트 레벨'은 분명 선수 육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 의도에 상당히 부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팬 육성이라는 면에서는 아쉬움이 많다. 요컨대, 너무 그 범위가 좁다. 리틀에서 40명, 중학에서 30명이면 학부모나 그 친척, 친구들까지 다 합쳐도 야구장 하나 채우기에 턱도 없다. 물론 그들 모두가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처럼 대형 프로 선수로 성장한다면야 백만 관중이 그들을 따라 모이겠으나, 앞날을 누가 장담할까? 또 선수 육성 그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너무 그 대상이나 방법이 좁고 깊지 않나 싶다. 육성이라는 것은 요컨대 '도전'과 '안전'의 균형이다. 도전은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건, 자기 자신이 정한 선을 넘어가건 간에 어떤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안전은 그 한계를 넘는 중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회복 못할 정도로 다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연령과 생각에 따라 그 도전과 안전의 균형이 달라져야 한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일단 야구를 좋아하는 게 우선이니, 도전보다는 안전이 필요하다. 요컨대 친구 이기고 자기 구속 몇 넘어가는지 신경쓰기보다는 일단 야구공, 방망이 들고 노는 데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TV나 인터넷을 통해 접한 슈퍼스타들의 엄청난 퍼포먼스를 의식하게 될 때가 온다. 경쟁을 생각하고, 성장을 생각하는 거다. 그 단계 이전에 야구 말고 더 좋은 게 있어서 그 길로 간다면 야구가 그들을 붙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경쟁과 성장을 받아들일만큼 야구가 좋다면, 그때부터는 놀이보다 실전과 훈련의 색이 더 짙어질 거다. 도전이 안전에 슬슬 앞서기 시작할 때다. 그 정도를 다시 넘어서 단순히 옆에 있는 친구를 이기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자기 응원팀을 맨날 가지고 노는 국내 강팀, 아니면 한국의 숙적인 일본이나 미국을 이기고 싶다는 생각, 게릿 콜이나 오타니 쇼헤이처럼 강속구를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온다. 경쟁과 성장을 받아들이는 걸 넘어 욕심을 부리는 향상심의 단계다. 이때부터는 프로를 염두에 두고 고도의 훈련과 격렬한 실전이 필요해진다. 이쯤 되면 안전보다는 도전이다. 이런 각 단계를 거치다 보면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보다 마지막에 남는 사람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마지막까지 남는 소수의 사람들도 그들이 모두 오타니 쇼헤이나 게릿 콜이 될 수는 없다. KBO 같은 프로 리그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마지막에 남는 소수의 사람들도 가급적 많은 게 좋다. 유망주가 몇 명이라도 더 있어야 그 속에서 보석이 나타날 확률도 그만큼 올라갈 테니까. 그런데 리틀에서 40명, 중학에서 30명이다. 이들이 고3, 혹은 대학교 드래프트 연령까지 그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기억하기로 재능 면에서 최고라는 소위 '베이징 키드' 세대에서도 리틀에서도 잘했고 중학교에서도 잘했고 고등학교에서도 잘해서 프로로 올라온 선수는 양창섭(삼성 라이온즈) 정도다. 나머지는 어느 단계에서 갑자기 확 성장하여 두각을 드러낸 경우거나, 처음 기대보다 성장하지 못했다. 그 양창섭도 프로에 와서는 시행 착오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재능은 둘째치고, 몇 명이나 남아 있을까? 국가대표 상비군이라고 하지만, 현재의 상비군인 동시에 미래의 스타가 되어야 하고, 또 어느 단계부턴가는 대폭 감소를 면할 수 없는 것이 어린 선수들이다. 아무래도 인원 수나 프로그램의 방향에 차등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리틀이나 중학이나 거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다 경기력이다. 아예 이제 막 소질이 있어서 야구공 만지기 시작하는 어린 야구 아동들이 서로 많이 모여서 야구로 실컷 놀 수 있는 기회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어느 단계까지는 선수 육성과 팬 육성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로 밥을 먹게 되지는 않더라도, 밥 먹는 것보다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게 곧 팬이 되는 것이고, 그들 중에서, 아니면 그들의 아이들 중에서 또 재능있는 누군가가 나타날 확률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경쟁, 경기력에 초점을 맞추고 '소수 정예'를 지향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선택된 선수들이 성장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겠지만, 800만 관중을 동원한다는 거대 리그를 생각하면 그 규모로 끌어낼 수 있는 영향력은 한정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도전보다는 안전, 경쟁과 훈련보다는 놀이가 앞서는 '페스티벌'과 안전보다는 도전, 경쟁과 훈련이 앞서는 '캠프'를 모두 같이 시야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승리만 생각하면 되는 체육단체가 아니라 승리와 흥행을 모두 생각해야 하는 프로 스포츠 단체인 KBO가 말하는 '넥스트 레벨'이 체육계 선수촌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아쉬움은 올해도 여전하다. 그들이 맞서야 할 전장에는 소수 정예 특공대가 필요한 부분이 있고, 대군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모든 부분에 소수 정예로 해결하려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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