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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시선] 비로소 돌려받은 '30승 투수'의 이름'값'
23-07-06 11:57 254



은퇴선수의 성명권(퍼블리시티권)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되찾은 주요 권리 중 하나다. 2000년대 중반 온라인 프로야구 게임들이 출시될 때만 해도 선수들의 이름과 기록은 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2009년 이상훈 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일구회를 통해 처음으로 성명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그 덕분에 이제 선수들은 자신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

 

모든 선수가 그 대가를 받았던 건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 OB 모임인 사단법인 일구회는 4일 "일본 오사카를 찾아가 고 장명부 전 롯데 자이언츠 코치의 유족을 만나 고인의 성명권 금액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일구회에 따르면 지난해 유족 측이 가입에 대해 문의했고, 검토 끝에 가입이 승인됐다. 김광수 일구회 회장은 "공도 있지만 과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한국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공과 모두 KBO리그 역사의 일부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명부 전 코치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였다. 한국 프로야구가 태동하기 전인 1968년부터 1982년까지 일본프로야구(NPB)에서 뛰며 통산 339경기에 등판, 91승 84패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했다. 특히 1979년과 1980년에는 히로시마 도요카프의 주축 투수로 활약, 일본시리즈 2연패에 공헌했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가 재일교포 선수들을 수급하던 1983년 모국 땅을 밟았고, 초창기였던 KBO리그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60경기(선발 44경기) 427과 3분의 1이닝을 소화하면서 30승 16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6을 거뒀다. 44번의 선발 등판 중 완투가 36번인 '철완'이었다. 현대 야구에서 선발 등판 30회, 200이닝 소화도 쉽지 않은 현실과 비교하면 더욱 충격적인 기록이다. 427과 3분의 1이닝 그리고 30승은 이후 그 누구도 다시 기록할 수 없었다. 최동원·선동열·류현진 등 이후 당대 최고의 투수 그 누구도 장명부의 기록만큼은 재현하지 못했다.


프로야구 게임에서 좋은 기록을 가진 선수일수록 사랑받는다. 장명부 코치도 그랬다. 그러나 정작 게임 밖에서는 고인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에서 코치를 맡았지만, 도박 빚과 마약 투약 혐의가 그를 따라왔다. 결국 1991년 한국을 떠났고,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2005년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선정한 40주년 레전드 올스타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게 KBO리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인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그랬던 장 코치의 유족에게 일구회 가입 및 성명권 금액이 전달됐다는 건, 단순 보상 이상의 의미일 수 있다. 불명예스럽게 한국을 떠났던 그의 공식적인 '복권'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동안 그의 기록은 추앙됐으나 한국 사회의 '외부자'이자 '문제아'였던 투수 장명부에 대한 명예 회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뒤늦게나마 일구회가 앞장서 외면받았던 역사의 주인공을 재조명했다는 데에서 의미가 크다.


역사는 기억을 어떻게 기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이는 제대로 기념된 역사는 팬들이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된다. 경기력이 아니더라도 리그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주체가 누구냐도 중요하다. 지난해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선정이 그랬듯 KBO가 앞장선다면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일구회의 이번 결정이 회원 한 명이 늘어나는 것 그 이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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